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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하우스
2001 한 살 주니 본문

2010년 3월에 한 살 주니 이야기를
옛 주니하우스에 올렸었는데
그때 기록을 바탕으로
한 살 주니를 추억하고자 해요.
외과 레지던트 1년차였던 박아빠에게
한 살 주니의 기억은 별로 없어요.
김엄마의 육아일기,
장인어른이 찍어둔 사진을 통해
추측할 뿐이에요.



빤쭈니가 태어나기 전,
외할아버지댁에는 엄지가 있었어요.
같이 있어도 되었는데 외할머니는
혹시나 빤쭈니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봐
아무도 없는 박아빠와 김엄마 집에
엄지를 데려다 놓았고
외할아버지와 김이모가 번갈아 가 있었어요.
엄지는 빤쭈니가 미국에 있을
2013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김엄마와 빤쭈니는
2월에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마지막으로 엄지를 보았는데
그때 품에 안겨 좋아라 했었다고 해요.


빤쭈니와 함께 했던
26년의 시간을 빼고는
박아빠와 김엄마의 삶을 얘기할 수 없어요.
지금은 졸업하고 부모 품을 떠났지만
여전히 엄빠와 렌트비로
끈끈하게 연결된 빤쭈니에요.
ㅋㅋ



무엇 때문인지
홀라당 벗고 좋아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목을 세우고 노는 빤주니에요.
옛 주니하우스 기록을 보니
빤쭈니의 몽골 반점은
다섯 살 넘게 남아있었다고 해요.



모든 아이들의 미소가 아름답지만
박아빠와 김엄마에게 빤쭈니의 웃음은
무장해제 버튼과도 같았어요.
박아빠는 레지던트 1년차 때
제일 좌측의 사진을 갖고 다니며
간호사와 인턴들에게 자랑하는
푼수짓을 서슴지 않았어요.

박아빠는 한 살 빤쭈니를
한번도 목욕시키지 못했어요.
장모님이 대부분 목욕을 시켰고
시간이 맞을 때 김엄마가 도왔어요.
심지어 기저귀 갈이도
별로 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 벌인지 박아빠는
지금도 똥냄새 맡으며 일하고 있어요.

빤쭈니는
양가 집안의 첫째 손녀에요.
그래서 모든 물품들을
다 구입해야만 했어요.
그러나 동시에
양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집중되어
많은 선물을 받기도 했어요.

사촌동생 유민이는 태어나 첫 우유로
80cc의 우유를 먹었어요.
빤쭈니는 이유할 당시
약 80cc의 우유를 먹었어요.
빤쭈니 우유 먹이느라
외할머니와 김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고
오히려 이유식을 빨리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어린 시절 빤쭈니 모습은
실제 목격하지도 못했고
사진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의 빤쭈니를 통해 유추하곤 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빤쭈니 미소는 아름다와요.
그리고 그렇게 미소짓도록
많은 사람들이 빤쭈니를 도와주고 있어요.
빤쭈니의 미소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고
도움을 받은 이상으로
더 많은 사랑을
주변에 흘려보내길 기도합니다.

외할머니를 빼고는
빤쭈니의 인생을 얘기할 수 없어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빤쭈니가 다섯 살이 되어
엄빠빠와 함게 살 때까지
빤쭈니를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주시고
생의 초기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셨어요.
지금 외할아버지는
주니하우스 근처 요양원에,
그리고 외할머니는 주니하우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머물고 계시니
우리 식구가 두 분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그나마 갚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아요.



박아빠와 달리 김엄마는
빤쭈니가 태어난 뒤 삶의 중심을
빤쭈니에게 두고 살아왔어요.
그러나 구속하지 않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하나님 자녀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어떤 마음과 삶의 자세를 가져야할지
가르치며 또한 직접 보여주었어요.
그덕에 박아빠도
아빠로서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어요.


박아빠는 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한 살 주니, 두 살 주니... 열 살 주니,
이렇게 모두 다 데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왔어요.
지금의 빤쭈니를 매우 사랑하지만
동시에 지나간 그 시절은 늘 아쉽기만 해요.

그러나 스물 다섯 빤쭈니는
상상만해도 너무 시끄럽고 귀찮다며
지금의 나 하나로 만족한다는
깨는 답을 보내왔어요.

사진이 있고 기록이 있어서
빤쭈니의 한 살 시절을
이렇게 생생하게 추억할 수 있어요.
그러나 두 살 주니의 기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요.
사진첩을 뒤져
비록 왜곡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 이야기를 다시 소환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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