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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2011)

2002 두 살 주니

박아ㅃA 2026. 3. 5. 11:45

2002. Where were we?

빤쭈니 어릴 때보다

김엄마 젊을 때가

더 돋보이는 사진이에요.

 

우리 모두 이럴 때가 있었어요.

 

김엄마를 좋아해 결혼했고

김엄마가 예쁘다고 말했었지만

이렇게 지난 사진을 보니

정말 예뻤구나 싶어요.

2002. 연세대 캠퍼스

확실치는 않지만

박아빠 기억에 이 장소는

연세대학교에요.

 

빤쭈니가 들고있는건

135 필름통이에요.

 

장인어른의 은퇴 후 취미가

흑백 필름 사진이었고

어린 시절 빤쭈니 사진은

거의 외할아버지가 찍어 주셨어요.

 

우리 가족만 갔다고 생각했는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함께 하셨네요.

2002. 가톨릭의대 캠퍼스

아마 박아빠 기억에

이건 정말 확실치 않은데

가톨릭 의대 운동장 아닐까 싶어요.

 

당시 출산과 육아 때문에

서초동 처가댁 근처에

주니하우스가 있었고

박아빠 주차스티커로 출입이 가능한

강남성모병원에 자주 놀러 갔어요.

 

아니면 아마

서울 대공원일 거에요.

2002. 외가집

처가댁이에요.

 

빤쭈니는 출생부터 만 네 살까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랑 함께 살았어요.

 

그래서 박아빠와 김엄마는

퇴근 후 처가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밤 늦게 집으로 향했어요.

 

빤쭈니 두 살 때에는

김엄마가 이틀에 한번씩,

박아빠는 일주일에 두번씩

집에 갈 수 있었어요.

2002. 외가집

후덕한 박아빠에요.

 

지금은 레지던트 때보다

최소 10-15kg 정도 살이 빠졌어요.

 

당시 바지 35인치에도 뱃살이 삐져나왔는데

지금은 32인치 바지가 헐렁해졌어요.

 

정확한 몸무게를 모르는 것은

어느 수준 이상 체중이 증가하면

더이상 체중계에 올라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ㅋㅋㅋ

2002. 서울대공원

아마 서울대공원일 거에요.

 

주말에는 거의 빤쭈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소풍을 다녔어요.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장소가

서울대공원이에요.

 

레지던트 2년차였던 박아빠는

빤쭈니 앉아있는 저 매트에서

항상 1-2시간 잠을 자곤 했어요.

 

그러면 김엄마는

잠에 빠진 박아빠를 깨우지 않고

빤쭈니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다오곤 했어요

2002. 중국집 만리장성

빤쭈니 돐잔치에는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지 못하시고

고모 할머니와 사촌 고모가

시댁을 대표해 참석해 주셨어요.

 

박아빠의 왜곡된 기억 속에서

빤쭈니는 돐잡이 물건으로

청진기를 잡았다 싶었는데

청진기는 아예 돐상 위에 없고

만 원 짜리 지폐를 들어올렸었네요.

 

빤쭈니는 이미 돐잔치 때

엄빠빠 손을 놓고도

아장아장 걸어다닐 수 있었어요.

2002. Where were we?

아- 여기는 어딘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빤쭈니 두 살 때이니

돐사진을 찍었을텐데

필름이나 파일이 

사진관 소유라고 주장한 사장님 때문에

결국 돐사진 파일을 받지 못했어요.

 

사장님은 언제든 와서

다시 사진을 뽑아가라고 했는데

그 사진관은 망했어요.

ㅋㅋㅋ

 

2002 월드컵 옷 입고 사진도 찍었는데

지금 돐사진 앨범이 어딨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2002. 행담도 휴계소

지금부터는 기억이

분명하게 나요.

 

여기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행담도 휴계소에요.

 

빤쭈니와 함께 하는 첫 휴가로

저희 가족은 안면도로 향했어요.

 

우유를 하도 안먹어

일찍 이유식을 시작했기에

이래저래 짐이 많았고

우리 가족의 첫 차였던

프라이드 영을 팔고

기아 스펙트라로 바꾼 뒤

여행을 떠났어요.

 

빤쭈니와 함께 하는 첫 여행이라 신나고

새 차를 운전해 가기에 더 흥분했었지요.

2002. 안면도

안면도의 한 펜션이에요.

 

1997년 신혼여행은 제주도에서,

1998년 결혼 2년차에는

아산시 공보의 관사에서 함께 살며

봄에 경주와 거제도 등을 여행했고,

1999년 결혼 3년차에는

내과 레지던트 1년차였던 김엄마와 함께

부안 적벽강을 거쳐

구례에 머물며 노고단에 올랐고,

2000년 결혼 4년차에는

의약분쟁으로 인한 의료 파업으로

휴가는 생각도 못했고,

2001년 결혼 5년차에는

빤쭈니 출산 휴가 4주를 받아

여름 휴가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제 함께

안면도를 왔는데

펜션에는 모두 처음이에요.

 

빤쭈니만 신난게 아니라

펜션이란 곳을 처음 와본

박아빠와 김엄마 모두 신났어요.

2002. 안면도

안면도 자연휴양림에

놀러 나왔어요.

 

빤쭈니는

엄마와 힘이 다른 박아빠가 태워주는

목마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리고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좋아해

항상 동물원이 있는 곳을 찾았었지요.

2002. 안면도

빤쭈니가

처음 바다에 발을 담근 날이에요.

 

무서워할까봐

더이상 나아가지 않았어요.

 

박아빠는

무섭거나 말거나 그냥 안고 들어갈텐데

김엄마는 매사에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다행히도 빤쭈니는

김엄마보다 도전적이지만

박아빠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요

2002. 안면도

머리가 별로 없던 빤쭈니에요.

 

이 사진들은 모두

필름 카메라로 찍었는데

필름 스캔도 안되어있고

추억 소환을 위해

앨범에서 몇 장 고른 뒤

문서용 스캐너로 대충 스캔한 거라

화잘이 아무래도 구려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 시절 빤쭈니 얼굴을 다시 보니

반갑고 즐거워요.

2002. 안면도

빤쭈니 어릴 때,

아마도 3-4살 정도였을 것 같은데

김엄마가 빤쭈니에게

동생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고

진지하게 물었어요.

 

시간이 더 지나면

둘째를 가지기 어려워지지만

사실 빤쭈니도 어릴 때

저희가 양육하지 않았기에

둘째를 갖겠다고 하는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어요.

 

그러나 빤쭈니의 대답은

언니가 필요하지 동생은 필요없다며,

엄빠빠의 사랑을

동생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대범한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껏 주니하우스는

엄빠빠와 빤쭈니 셋과 함께

열 마리의 냐옹이로 이루어져 있어요.

2002. 안면도

어릴 때 항상 졸리면

엄지 손가락을 빨면서

잠을 청하는 버릇이 있었어요.

 

손가락에 약을 발라야 하나

고민까지 했었지만

그 시절을 그럭저럭 넘기며

지금에 이르렀어요.

2002. 안면도

드디어 바닷물에

들어가는 날이에요.

 

김엄마에게 안겨서

허벅지까지 물에 잠겼어요.

 

호기심에 신나면서도

여전히 무서워서

더이상 물 속에 들어가지는

못했어요.

2002. 황도

안면도 본 섬에 있던 펜션에서

부속 섬 황도에 있는 펜션으로

숙소를 옮겼어요.

 

그리고 물이 빠진 갯벌에 나왔어요.

 

빤쭈니는 바닷물보다

갯벌을 더 좋아했고

작은 게와 소라를 관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2002. 황도

예나 지금이나 늘

사진에 협조적이지 않은 빤쭈니에요.

 

그런데 당시

박아빠가 좋아했던 솔의 눈인지

포카리 스웨트인지

어쨌든 음료캔에 관심이 많았고

한 손에 캔을 들고 흔들면

관심어린 눈으로 박아빠 쪽을 향해

그렇게 정면 사진을 찍었어요.

2002. 이천 장호원

미국 할아버지와 함께

증조 할아버지 산소에 왔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미국 LA의 이상래 목사님이

초등학교 주일교사를 하던

대학 1학년 박아빠에게 장래 소원을 물었고

박아빠는 좋은 아빠가 되면 좋겠다고 했어요.

 

미국 할아버지가 

전형적인 가부장적 옛 어른이라

자녀와의 친근한 관계를 갈망했기 때문이에요.

2002. 이천 장호원

그런데 두 살 빤쭈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햇살에 눈 녹듯이 녹여버렸어요.

 

한 세대를 건너뛰고

팽팽한 갈등과 이해 관계를 넘어

남의 자식처럼 바라보아서 그럴까요?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여전히

빤쭈니의 가장 든든한 영적 후원자세요.

2002. 안면도

그리고 이 장난기 많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25년이란 시간을 흘려 보냈어요.

 

다행히도 아직까지 저희들 사이는

좋은 것 같아요.

 

그러나 언젠가는 빤쭈니도

엄빠빠 때문에 실망하고

우리 한계에 고개저을 때도 있을 거에요.

 

그때에는 엄빠빠가

빤쭈니 어릴 때 품어주었듯이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주기를 기도할 뿐이에요.

 

좋은 아빠라는 것은 

영원한 숙제 같아요.

2002. Where were we?

평상시에 양복이나 넥타이나 구두를

잘하고 다니지 않는 박아빠 스타일로 봐서

아마도 토요일이나 주일,

당직 후 다음날 오전 퇴근한 뒤

바로 빤쭈니와 놀러 나온 것 같아요.

 

빤쭈니도 이 시간을 기다렸겠지만

엄빠빠도 일주일 내내

이 때만을 고대하며 살았더랬어요.

 

고사리같은 저 손을 잡고,

또 번쩍 안아 가슴에 밀착하고,

혹은 목마를 태워 다닐 때

빤쭈니의 체온이 전하는 사랑은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요.

2002. 외가집

이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스물 다섯 처자가 되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요.

 

두 살 빤쭈니를 돌아보니

박아빠와 김엄마가 빤쭈니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시절

빤쭈니 옆에서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장인어른과 장모님,

또 김이모와 엄지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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