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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하우스
2020년의 기억 - 뿌리깊은교회 본문

2020년은 연초부터 코로나19로
정신이 없던 해였어요.
새벽 출근 길 지하철에서
전염병 예방과 숙면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한번에 성취한
지혜로운 분을 만날 수 있었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발달한 교통수단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급속도록 전 세계에 퍼지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보니
확산을 막기 위해
단체 모임도 금지되어
우리 교회도 정기 예배 모임을
드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교회가 비어있던 틈을 타서
강택성 집사님이
부엌 리모델링에 나섰어요.

Before & After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예전 부엌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아요.
어찌되었건
매우 깔끔해진 부엌과 함께
식기세척기도 구비되어
모두가 즐거워 했어요.

교회는 당국의 지침을 따라
모든 예배 일정을 조율하고
검사 및 방역 장비를 구비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규모 확산 예방에
만전을 기했어요.

인원이 얼마 안되는
아이들 예배는
정시에 모여 드렸어요.
여기는 홀키 예배실이에요.

블틴은
어른 예배실로 옮겨
듬성 듬성 앉아
예배를 드렸어요.

그리고 어른들은
인근 공원에 모여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
야외 예배를 드렸어요.
이민욱 목사님은
이렇게 드리는 우리의 예배,
긴급한 시기에 급조했지만
예배의 연속성을 잊지 않으려한 시도를
광야 예배라 명명했어요.

그리고
실내 모임이 금지되다 보니
실외에서 삼삼오오 모여
목장 모임도 갖기로 했어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주니하우스도 후보지가 되어
박아빠는 부지런히
모임을 가질만한 장소를
찾아 다녔어요.

그렇게 해 찾은 곳이
주니하우스 뒷 편
116동 앞 정자에요.
여기서 두어 번 모임을 했어요.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고
엄장로님은 이곳에서 함께
모임을 했던 기억이 나요.

박아빠는 주니하우스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유튜브 라이브 중계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세팅해 두었어요.
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이 시기를 헤쳐나가고자
여러 시도를 했었네요.

반가운 얼굴 석현이도 있고,
코로나를 맞아 확찐자 희건이도 있고,
앳된 얼굴의 연우는 파마를 했었고,
성하는 이때 살이 많이 찌지 않아 보기 좋네요.

그렇게 교회는
야외 예배를 통해
세상의 요구와
영적인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를 썼어요.
지금 돌이켜볼 때에는
재미난 이야기거리지만
이 당시에는
갖가지 묘수를 쥐어짜내며
살아남으려 고군분투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며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
생활 규칙과 행동 규칙도 알려지고
광야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도
늘어났어요.
이와 동시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광야 예배를 향한 신고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광야 에배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날은
점심 도시락도 준비되어서
원칙은 가족끼리 멀찍이서
실상은 두세 가정씩 모여서
식사도 함께 하며
코로나 시기
슬기로운 교회생활을
즐겼어요.

백병열 집사님과
강택성 집사님이에요.
강택성 집사님은
2020년 초
교회 부엌과 더불어
목사님 사무실과
자모실에 홀키 예배실까지
자비로 인테리어를 진행해 주셨어요.
오랫동안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집사님 내외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어요.

황 트리오에요.
실내에서의
잘 갖추어진 환경 아래
제대로 준비된 찬양을 못하게 되었을 때
황자매들은 바이올린, 첼로, 플룻으로
풍성한 찬양의 기쁨을 선물해 주었어요.
거참,
애비, 애미가 누구신지
딸래미들 잘 키우셨어요. ㅎㅎ

장소가 바뀌었어요.
좀 더 너른 장소를 찾아서,
주택 밀집 지역이 아니라
공공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나왔어요.

홀키 예배에서는
빠질 수 없는
찬양과 율동 시간이에요.
고냥이들의 츄르 반응과 같이
찬양 소리에 맞춰
손과 몸이 먼저 반응을 해요.
그리고 이날
현준 형제가 예은이 안고
말 안하고 산책을 갔다가
예은이가 없어진줄 알고 찾아나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어요.

은행나무 단풍길이 예쁜
영주 부석사에요.
이민욱 목사님 부부와 함께
영주 부석사를 찾았어요.

두 분도 부석사는
처음이에요.
많은 목회자,
특히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그렇겠지만
이민욱 목사님과 엄세영 사모님도
개인 시간이나 장소,
사적인 영역이 별로 없이
지난 십 수 년을 살아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오랜 기간 건강하게
사역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이
박아빠와 김엄마의 지론이에요.
선교 문화가 발달한 서구 교회가
조선 시대 선교사들을 위해
괜히 휴양 별장을 지어준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박아빠, 김엄마가 가 본 사찰 중
목회자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줄
맑은 정기가 흐르는 곳으로
목사님과 사모님을 데리고 왔어요.
그러고보면 박아빠와 김엄마는
이보다 한참 후이긴 하지만
박대중, 김건일 목사님 내외 분도
내소사와 월정사로 데려갔었군요.
ㅋㅋㅋ

유흥준씨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영주 부석사를
최고의 사찰로 뽑았던 것 같아요.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의 경사지에
석축으로 단을 쌓아서
층층이 건물을 배치해
누각의 아래 통로를 통해
다음 건물로 나아가게
만들었어요.

입구에서 올라오는 길의 방향은
무량수전과 안양루에서
30도 가량 꺽여서 있어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주기도 해요.
한 단 한 단 오를 때마다
뒤로 돌아 바라보면
최고의 경치를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
무량수전이에요.
여타 사찰의 대웅전과 달리
불상이 건물의 정면이 아니라
옆(동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고,
유흥준 씨가 말한 배흘림 기둥이
있는 곳이에요.
얼마전 썼던 내소사의
꽃살무늬 창살과 대조되는
단순한 창살이
오래된 목조 건물에 잘 어울려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지어졌고,
화재로 소실된 후
고려우왕 2년(1376년)에
원용국사가 중건했다고 하고,
그래서 고려시대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고 해요.
(출처: 국가유산청)
부석사를
두어 번 방문했던 박아빠는
이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코로나19는
예배와 공동체 생활의
많은 부분에 제한을 가했지만
또 이렇게 생긴 여유 때문에
이민욱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영주까지 내려와
가을 단풍을 한껏 누리고
돌아가게 해주었어요.

우리는 성경에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만 들었는데
여기에도
의상대사의 지팡이에서
뿌리가 나고 잎이 나
선비화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요.
나무 둘레가 5cm 정도인데
수령이 500년은 족히 되었다 하고
잎이 출산에 효험이 있다고 해
훼손이 심하여
철창으로 둘러싸 두었어요.

예전에 이 목사님은
개량 한복을 즐겨 입었는데
여기 부석사에
꽤 잘 어울리는
복장이에요.
장소에 맞는 격식을 차린다고
두 손을 모아 합장 인사까지
한번 해주셨어요.
ㅋㅋ

김건일 목사님이
2025년 12월부로
영주의 한 교회에 청빙받아
담임목사님으로 가셨어요.
아직 부석사에
한번도 와보지 않았다고 했는데
영주 시민이 된 목사님을 모시고
부석사 관광 안내에
한번 나서야겠어요.

사실 두 분을 모시고
영주 부석사로 향한 것은
희언이의 졸업작품 전시회가
포항에서 있었기 때문이에요.
희언이 아빠, 엄마는
선교 사역 때문에 우리나라에 없고,
그래서 희언이는
저희 부부에게 연락을 했어요.
꼭 오라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꼭 가봐야할 경우이기에
오랜 기간 희언이를 알고 지낸 두 분에게
함께 포항에 내려가면서
부석사에 들러 단풍 구경도
하자고 한 거에요.

근데,
남아있는 사진 중에
어떤게 희언이 작품인지
잘 모르겠어요. ㅋㅋ
어쨌거나 저쨌거나
부석사 들렀다 한동대 들렀다
구푱포 들러 대게 먹고
늦은 밤 귀가를 했어요.
너무 늦은 시간 돌아오게 되어
새벽기도 인도를 할
목사님께 미안했는데
희건이에게 전화가 와
고열이 나고 코로나 감염이 의심된다고 해
목사님 내외분도
조심한다는 차원에서
새벽기도는 개인기도로 전환하자고
새벽기도 참석자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문자를 드렸었지요.

강택성 집사님은
광주에 가구공장을
운영하면서
오골계를 비롯해
표고버섯도 키우세요.
그리고 교회의
목사님과 안수집사님을 초대해
바베큐 파티를 열어주었어요.

버섯구이에 버섯 수제비,
그리고 오골계도 쫄깃하니
무척 맛있었어요.
김엄마는
오골계의 검은 피부색 때문에
잘 먹지 못했다지만
여느 치킨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에요.

강집사님은
교회 사회봉사팀과 함께
여러 개척교회와
국내 선교단체의
목사관과 사택 리모델링을 해주며
열심히 봉사하셨어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예배와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이 길어지면서
여러 이견으로 교회를
떠나게 되셨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다시 보고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게 되니
다시 보고 싶고
어디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신앙생활 잘 하셨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은지
이제 1년이 되어가요.
홀키 담당 권용수 전도사님과
블틴과 세틴 담당 황동영 목사님도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12월부터
박아빠와 김엄마가
교회 부서 사역을 맡게 되었구요.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교회 내 모임은 어려웠기에
온라인 예배로 대체되었고
박아빠는 이렇게 세팅을 하고
모니터의 설교 원고를 읽으며
예배 영상을 만들어
사역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어요.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우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다가오는 성탄절에
코로나 19로 어려운
이웃과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자
애를 썼어요.
지금은 다 잊어버린 것 같은,
이렇게 사진을 들추어야만 기억나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지만
주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과
한결같은 마음을
하나님은 기억하시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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